* 이전 글 [의대 증원 사태의 진짜 본질]을 참고 바랍니다.
어느덧 의료 사태가 8개월에 접어들었다.
병원들은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의료대란은 심각한 수준이다.
전공의를 그만둔 의사들은 이미 절반 가량 타 의료기관에 취직했다고 한다. 게다가 휴학중인 의대생들은 올해 진급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며 그 중 1000명 이상이 현역병으로 입대해버렸다. 신규 전문의, 군의관, 공보의의 배출이 완전히 끊어져버린 것이다.
이국종 교수 또한 이번 정책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였다.
초기 80%이상이었던 정책 지지율은 이제 부정평가의 주 이유가 되고있다. 이건 좀 아니다 싶은 국민들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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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동안 관련 토론회, 브리핑, 청문회, 국정감사 및 각종 인터뷰들을 최대한 챙겨봤다. 의문점이 가득했던 나로서는 정부에서 명쾌한 설명과 비전을 제시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매번 경악을 금할수가 없었다. 그것들을 당신도 봤다면, 100% 공감할 것이다. 단언컨대, '자칭 의료개혁'은 완전히 틀렸다. 그 이유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겠다.
# 옳은 정책의 조건
올바른 정책에는 충족되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첫 째, 방향성. 국가를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둘 째, 현실성. 현실세계에서 물리적으로 실현 가능해야 한다
셋 째, 과학성. 올바른 근거와 통계에 대한 해석을 기반으로 타당한 추론과 예측을 이끌어내야 한다.
넷 째, 절차적 타당성. 아무리 옳은 목적을 위해서라도 그릇된 방법을 택한다면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현재의 의료 정책은 그 어느 하나 제대로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첫 째, 방향성의 문제에 대해 다루도록 하겠다.
추후 다른 글도 참고 바란다.
# 방향성의 문제
우선 의사 숫자는 왜 적정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적으면 의료의 공급이 부족해지고(의료 행위의 부족) 많으면 의료의 공급이 과잉(의료 비용의 과잉)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재원은 한정적인데 반해 건강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병원시설, 의료기기, 설비, 약물 모두 돈이다. 의사, 간호사를 포함해서 의료보조인력, 행정인력, 원무인력 등 모든 직원의 급여도 당연히 돈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굉장히 바람직한 의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싸고, 빠르고, 질 좋은 의료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시스템은 아래의 두 가지 이유로 위기에 놓여있다.
- 건강보험재정 고갈
-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인구 감소
건강보험은 국민연금과 그 성격이 매우 유사하다. 국민연금은 생산인구(젊은사람)들이 은퇴인구(나이 든 사람)을 부양하는 구조이다. 근래들어 국민연금이 폰지사기라며 '안내고 안받기'를 주장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이유이다.
의료도 똑같다. 건강보험은 생산인구가 아픈사람을 공조하는 구조이다. 그리고 아픈 이들의 상당수는 나이 든 사람이다. 현재 만 65세 이상은 전체 인구의 약 19.5%를 차지하지만 진료비는 전체의 43%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의사 증원은 곧 의료의 공급의 증가를 뜻하며, 이는 젊은 생산인구로 하여금 더 많은 의료비를 부담하라는 뜻이다.
심지어 생산인구는 저출산으로 줄고 노인 비율은 빠르게 증가한다.
나는 의대 증원이나 국민연금액 상향을 함부로 주장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미래 세대를 얼마나 더 착취하고 싶은 것인가?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의료의 양이 절대적으로 적다면 공급을 늘릴 필요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통계를 살펴보자.
<출처: OECD 보건통계 2022>
우리나라의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연간 14.7회로 OECD 평균의 2.5배 이상이다. 병원 병상수도 OECD평균의 2.9배 이다. 그리고 기대수명은 상위권, 회피가능사망율은 하위권이다.
외래 수, 병상 수, 의료의 결과 등 통계 그 어떤부분을 보아도 우리나라 의료는 '공급의 과잉'을 대비 해야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의료의 공급을 늘리겠다는 정책을, 그것도 정원의 60%가 넘는 증원으로 추진한다니.
이것은 분명한 역행이자 포퓰이즘이다.
물론 의사의 증원이 공급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지불체계의 전환, 즉 총액계약제이다. 이는 간단히 말하자면 의사가 공무원처럼 일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 경우 의사수만 늘고 의료의 공급은 줄어들 것이다. 잘 모르겠다면 군복무 시절에 군의관이 진료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떠올려보자. 혹은 보건소 의사를 떠올려보자. 총액 계약제인 국가는 진료 한번을 위해 수 개월씩 대기하는 것이 디폴트다.)
혹은 정 반대로 민영화를 통해 자기 의료비는 자신이 온전히 지불하는 방식으로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정부의 의료 정책에서 총액계약제로 가겠다 혹은 민영화로 가겠다는 말을 단 한번이라도 들은적 있는가?
만일 정부의 계획이 총액계약제 혹은 민영화라면, 이에 대해 국민에게 분명한 설명과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 경증 진료의 수요를 낮춰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증 의료와 응급 의료의 부족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정된 자원 내에서, 의료의 공급을 어떻게 필수/응급 의료로 재배분 할지에 대한 고민해야만 '진짜 의료 개혁'을 이룰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경증 진료 자기부담 비율 증가'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10000원짜리 진료를 봤다면,
- 자기부담금 3000원, 건강보험 7000원
-> 자기부담금 5000원, 건강보험 5000원
으로 비율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환자도 의사도 싫어할 만한 정책이다.
환자는 비용이 증가해서, 의사는 수입이 줄어서(환자 수가 줄기 때문) 싫어한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의료 수요를 억제하고 건강보험을 지속 가능케 할 방향이다. 덧붙여 의사 수입이 많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만족 시킬만한 방식이다. 물론 필자는 그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리고 중증/응급 의료의 열악한 환경의 개선을 위한 재정 마련을 위해서도 위와 같은 방식이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의료 소송에 대한 부담을 의료진이 느끼지 않도록 하는 법적 장치도 마련되어야 한다.
덧붙여 건강보험 보장성의 축소를 통해, 비용 대비 효율이 낮은 의료행위는 환자 본인이 전부 부담하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에 동의하기 어렵다면 이전 글 '의대증원 사태의 진짜 본질'을 참고 바란다.
+ 예상 질문과 답변)
Q. OECD 평균에 비해 의사 숫자가 적지 않는가?
A. 맞다. 의사 숫자는 적다. 동시에 의료의 공급은 많다. 행위별 수가제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지불체계를 가진 일본도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한 인구당 의사수를 지닌다. 지불체계가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것은 전제부터 틀렸다.
Q. 의사가 돈을 너무 많이 벌지 않는가?
A. 나는 이에 대해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첫 째, 특정 직종이 수입이 높은 것이 문제일 이유가 있는가? 둘 째, 현 의료의 문제가 의사의 수입 과다 때문인가?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이지만 인상깊은 분석이 있어 링크를 달아보겠다. '의료 수가 체계는 과연 부적절한가?'. 결론적으로 의사의 수입이 의료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기는 어렵다.
의사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은 그저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에서 행위별 수가제를 행하기 때문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덧붙여 나는 그 어떤 직종의 그 누가 100원을 벌든 100억 원을 벌든 상관없다. 그것이 적법하고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말이다. 오히려 그만한 가치를 창출한 것에 박수를 쳐줄 것이다.
Q. 공대를 살리기 위해 의대의 가치를 낮춰야하지 않는가?
A1. 반문하겠다. 의대가 비인기과가 되면 수험생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1)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를 간다 2) 공대를 간다
A2. 하향 평준화식 사고는 발전에 도움되지 않는다. 공산주의가 실패하는 이유이다.
Q. 의료 수요를 억제한다는 건, 아픈데도 치료받지 말라는건가?
A. 의료도 다양한 영역이 있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행위부터 (ex. 뇌/심장 수술 등) 생명과 직결되진 않지만 삶의 질을 올리는 행위 (ex. 비염치료, 통증치료, 불면증치료 등)까지. 후자의 경우 전자에 비해 단일 비용이 낮고 횟수는 많으며 가격탄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심장수술을 받아본 사람은 매우 드물지만 누구나 한번쯤 감기로 병원에 간다. 감기 진료 비용이 증가하면 병원에 덜 가지만 심장수술은 비용이 증가해도 병원에 안 갈 수 없다.
따라서 중증/응급 진료를 제외한, 경증 진료의 자기부담 비율 상승이 필요하다. 이는 의료의 결과는 최대한 유지하면서 재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