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을 살아가는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알아보자.
결론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 사회의 중심은 내가 아니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을 중심으로 삶을 살아간다. 생물은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의 중심은 나 자신일지언정, 이 사회의 중심은 결코 내가 아니다. 이 세상이 알아서 나를 이해하고 배려해 주길 바라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건설적이지도 않다. 사회는 수많은 구성원들이 각자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직면한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 남이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당위성도, 방법론도 없기 때문이다.
오해 없길 바란다. 나는 단순히 모든 세상의 문제가 모두 개인의 책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도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뿐이다.
예를 들어 가난해서 삶이 어렵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행동하는 것뿐이다. 세상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내가 부당하게 가난하다고 한들, 불평만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더 열심히 일을 하든, 더 효율적으로 돈을 벌 방법을 찾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위를 하든 정치에 입문하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간다. 학교나 회사를 가는 것도, 연애를 하는 것도,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것도 문제의 해결이다. 당장 눈앞 책상에 쌓인 먼지를 닦는 것조차도 문제의 해결이다.
질문을 해보겠다. 당신은 책상에 쌓인 먼지를 본다면, 책상을 닦고 공기청정기를 켤 것인가? 아니면 먼지의 존재에 대해 불평만 것인가? 아니면 풀풀 날리는 먼지를 외면하고 그냥 살 것인가?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은 비유적으로 '먼지의 존재를 불평만 하는 삶' 혹은 '먼지를 외면하는 삶'을 산다. 먼지 때문에 기관지가 안 좋아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더 심각한 것은 반대로 '공기청정기를 꺼버리는 삶'을 사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그들이 공기청정기를 끄는 이유는 '공기청정기가 먼지를 뿜는 사회의 악이다'라는 유명인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주장에 대해 합리적 사고과정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 기준 '악의 축'인 공기청정기를 때려 부수면서 정의가 승리했다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그들을 선동한 유명인은 인기를 얻는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책상에는 더 많은 먼지가 쌓이게 된다. 사실 공기청정기의 필터만 교체하면 되는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공기청정기의 필터를 갈아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비난을 받는다. '악의 편을 들어주는 악마들'이 기 때문이다. (본 블로그의 '세상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다', '정치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참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 분석할 땐 why를, 실행할 땐 how를
문제의 해결은 두 가지로 구성된다.
1. 왜(why) 문제가 생겼는가?
2. 어떻게(how)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문제를 마주하면 우선, why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Why를 잘 못 파악하면 좋은 의도와 방법론을 가지고도 그릇된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논리력과 비판적 사고가 중요한 이유이다.
Why를 파악했다면 그다음은 실행할 단계이다. 실행할 때는 how만을 생각해야 한다. 실행단계에서 why를 고민하는 것은 장애물이 된다.
가령 체력이 부족한 원인이 게으름으로 인한 운동 부족으로 파악되었다면, 게으름을 어떻게(how) 해결할지에 집중해야 한다. '왜 운동해야지?', '지금 날씨가 운동하기에 괜찮은가?' 등의 생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퇴근하자마자 운동을 가야겠다. 집 들어가면 게을러지니까' 혹은 '집에 있는 세면도구를 전부 헬스장 사물함으로 옮겨버리자. 그러면 씻기 위해서라도 헬스장을 가겠지'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 블로그의 '게으름 고치는 법' 참고)